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축 통화 (문단 편집) === 1980-90년대 === 레이건 행정부는 달러의 가치 하락을 방지하는 강한 달러 정책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경쟁력을 잃은 미국 제조업이 초토화된다. 제네랄 일렉트릭이나 제니스 같은 미국 가전기업들이 대부분 도산했을 때가 바로 이 당시였고, 미국 자동차 3사중의 하나인 [[크라이슬러]]도 거의 골로 갈뻔하다가 [[리 아이아코카]]로 인해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 기조가 강한 달러였기 때문에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위해 함부로 달러 가치를 낮출 수 없었다. 그 대신 생각해 낸 것이 미국에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기던 독-일의 통화가치를 높이는 것이였다. 이 때문에 1986년 미국은 여러 동맹국을 불러 미국에 거대한 무역흑자를 보고 있던 [[일본]]과 [[독일]]이 쓰고 있던 [[일본 엔]]와 [[독일 마르크]]를 절상시키라고 압박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면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려 일본, 독일 상품의 값을 상대적으로 높여 보는 떨어지는 자국 상품의 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었지만, 달러 기축통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예 상대국의 통화가치를 억지로 높여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이를 [[플라자 합의]]라고 하며, 이는 명백히 일본과 독일에 불리한 것이었지만[* 이 때문에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기나긴 침체기에 빠졌는데 "30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국을 위협하던 일본 경제의 기세가 아예 박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독일도 1990년대는 통일후유증과 함께 일본과 비슷한 침체에 시달렸지만 유로화로 갈아타는 행운을 만나면서 독일경제는 순항하게 되었다.], 양국은 국방을 미국에 맡기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의 합의해주기로 했다. 그 결과 엔화와 마르크화는 1-2년만에 거의 두배로 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이 계속되자 미국은 아예 무역수지의 개선은 포기하고 자본수지의 균형을 목표로 삼았는데, 저달러는 이에 방해되었다 (말하자면 해외 수익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니 오히려 손해가 된 것이다). 결국 저달러 정책은 미국이 기대한대로 무역수지의 개선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목표인 자본수지 개선에 독이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엔고로 미국이 수입하던 일본제 제품의 물가가 높아져 미국인들에게 고통이 되었다. 결국 참다못한 미국은 플라자 합의 10년만인 1995년,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엔고쇼크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엔화자산의 수요가 폭증하여 급격한 엔고현상이 일어났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플라자 합의]] 참조.] 이른바 "역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 낸다. [[플라자 합의]]가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로 무역적자 축소를 의도한 것이었다면, 이 역 플라자 합의는 오히려 무역수지 균형을 포기 내지 유예하면서까지 달러강세를 유도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 대신 달러에 몰린 자본을 유치하여 [[자본수지]] 흑자를 달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종합수지 균형을 이루는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 이것이 미국의 예상 이상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미국의 금융산업이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덩치를 키우며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고, 또 그렇게 몰린 거대자본이 IT기업들의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즉 90년대 특유의 높은 경제 성장률과 [[IT버블|버블경제]]을 촉발한 계기 중에 하나였던 것. 이로써 [[미국 달러]]는 트리핀 딜레마의 악몽으로부터 한동안 벗어나 다시금 안정적으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그 여파로 1990년대 중후반 [[외환위기|아시아의 외환위기]][* 역 플라자 합의로 구축된 달러 강세 - 아시아통화 약세 구도가 1~2년에 걸쳐 완전히 굳어버리면서, 당시 아시아의 금융취약국들은 연일 자국화폐의 약세를 면치 못하는 바람에 자본유출이 가속화되고 그것이 다시 약세를 유발하는 악순환에 빠졌음에도 이를 끊어낼 결단을 신속히 내리지 못해 종국에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를 거치면서 가치가 더욱 폭등하여, 2000년대 초반에 국제 외환보유고 통계상 미국 달러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그 위세가 정점에 도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